이분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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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적 사고

이분적 사고

한 청소년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중학교 시절에 상당히 학교 생활을 열심히 잘 했다. 특히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스포츠를 하며 지냈는데 자신의 그룹의 2인자로서 역할을 하면서 그룹에서 제일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친구와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똑똑한 일인자인 친구가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 특목고에 진학을 하게 되어서자신은 그 친구를 따라 갈 수 없어서 힘들게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학교를 선택해서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새로운 고등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고, 의미를 발견할 수 없어서 매일같이 학교에 가면 잠만자고 집으로 돌아오는 삶을 살게 된다.

또 한 청년 초기의 학생이 있다. 이 학생은 이 것 저것 스포츠에서부터 다양한 악기까지 해 본 것이 많다. 그런데 그 어느 것에도 특출한 두각을 나타낸 것이 없다. 그에 비해서 그의 친구들은 스포츠이던, 악기던, 공부던 무엇이든지 잘 한다. 이 청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되자 다양한 스포츠를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지만 이것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면서 우울감이 찾아오게 되었다.

위의 예시에 나오는 청소년과 청년은 왜 이렇게도 자신에 대해서 힘들어 할까?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문제 중 하나를 설명하면 이들은 “대극” 또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자신에 대해서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아이는  자신이 동경하고 동일시했던 친구가 사라짐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진 경우다.  공부도 스포츠도 잘하던 친구와 어울리면서 자신도 그 친구와 같은 그룹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그 친구와 동일한 선에서 생각했는데 똑 같이 열심히 놀던 친구는 특목고에 입학을 했는 데 자신은 아주 평범한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면서 자신에 대한 실패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친구는 성공한 사람이고 자신은 실패자라는 생각, 그리고 그 친구처럼 특별하게 될 수 없다면 내가하는 것들은 전부 무가치하고 아무것도 아니야 라는 생각이 아이를 무기력하게 만든 것이다.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나아” 라는 대극적인 생각이 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학교에 가면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고 잠만자고 돌아오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청년도 비슷한 경우다. 두 번째 청년에게 자신과 친구들 각각을 나타내는 상징물 (동물 인형 피규어)을 골라보라고 했을 때 이 청년은 자신과 친구들 각각의 상징물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딱 두 가지 상징물을 골랐다.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물 코알라 하나와 자신의 친구 전체를 나타내는 상징물인 백조였다. 분명히 여러 명의 친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의 생각 속에는  ‘친구 대 자신’ 이라는 틀을 가지고 자신과 친구들 전체는 다른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자신과 다른 뛰어난 존재이고 자신은 그에 비해 무기력하고 가치없는 게으른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바로 이 청년에게도 “대극” 적인 이원론적인 사고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가  상담 치료 수퍼바이져들 모임에 참석하여 전문가 선생님들의 소견을 들어보니 상담 현장에서 이런 대극적인 특성을 가진 청소년들이 오늘날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청소년은 실패할 바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낫다라는 생각으로 무기력함과 우울감에 적어 빠져나오질 못한다는 것이다.

‘대극’의 개념은 칼융의 분석 심리학에서 설명되어지는 독특한 개념인데 융에 의하면 사람의 내면은 이런 대극의 모습이 있는데 성숙한 사람은 그 대극의 조화를 구현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대표적인 대극의 개념에는 “의식과 무의식, 자아와 그림자, 페르소나와 아니마 아니무스“등과 같은 것이 있는데 인간의 정신은 이런 대극의 조화를 통해 전일성과 총체성을 구현할 수 있고 이런 ‘대극의 조화’는 몇 가지 과정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로는 ‘나의 그림자’를 이해함으로 자신의 대극적인 모습에 대한 자각을 하는 과정이다. 내 안에 좋은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부정적인 모습 (그림자)도 있는 것을 인정함으로  인내와 겸손을 배우는 도덕적 과정을 거치는 것이 대극의 조화를 이루게 한다고 본다. 위의 청소년들은 아직은 자아의 내면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눈이 형성되어 있질 않아서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바라볼 때 인내와 겸손을 배우기 보다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만 촛점을 맞추어 대극적 모습을 더 극대화 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두 번째 단계는 분화와 통합이 일어날 수 있도록 양쪽의 대극 된 모습을 균형 있게 계발하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내 안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있다고 할 때 한쪽만 옳은 것이라고 발달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인정하고 있는 상태로 잘 발달 시키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남자기 때문에 남성성만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성이 대극적으로 나타나는 분은 그것을 인정해서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필자가 잘 아는 한 남성분은 여성성이 많이 있는데 그 여성성을 잘 활용해서 남성성만 강하게 있는 남성들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좋은 심리 치료사가 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대극의 성향이 너무 강하면 그것 때문에 마음에 갈등을 많이 겪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내안에 관계에서 ‘수동, 복종’의 성향이 많이 있는 데 동시에 “ 주도, 통제”의 성향도 강하게 있으신 분은  두 가지 대극의 성향이 함께 갈등함으로 인해서 내 자신을 수용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고 내면의 갈등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보다 두 가지 성향의 모습이 모두 다 나의 모습인 것을 인식하고 필요할 때 잘 활용함으로 적응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세 번째 단계로는  대극의 조화를 위해 자신을 잘 인식하는 것이다. 여기의 인식은 자신의 연약한 그림자의 모습을 그대로 인식하는 첫 번째 단계와는 약간 다른 ‘나는 어떤 존재인가? ‘에 대한 궁극적 정체성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어떤 존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는 내가 무엇이 될 수 있는 가? 또는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 가? 에서 답을 찾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것에서 답을 찾으면 계속 환경이 바뀔 때마다 정체성에도 위협을 받게 된다.그러므로 ‘나는 어떤 존재인가’ 에 대한 정체성 질문에 대한 답은 절대적인 존재 즉 불변하는 영적인 존재(하나님)를 발견함으로 찾을 수 있는 답이다.

청소년과 청년기는 대극적인 요소가 더 두드러지게 보여지는 삶의 단계로 대극의 조화는 주로 중년기의 ‘개성화’ 작업으로 일어난다고 칼융은 보고 있지만 저자는 삶의 어느 단계이든 이런 작업들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본다.  바라기는 대극적 사고로 힘들어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일등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야” 라고 하는 대극적 사고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대극의 조화를 경험한 어른들의 지혜로운 도움으로 “일등이 아니어도 세상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아“라는 생각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무기력함을 이겨내고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서미진 박사(호주 기독교 대학 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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